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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요르단에 있어야 할 이유
첨부 작성일 2015-03-05 16:54:35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2050

내가 요르단에 있어야 할 이유


박종문 / 요르단 94기 기계





나는 KOICA의 배려로 내 이력에 2번째의 해외 시니어봉사단원으로서 요르단에 파견명령을 받았다.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나라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요르단에 와야만 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국내교육을 받으면서 선배단원을 통해 요르단의 생활상과 실정 그리고 봉사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것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심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 그리고 두려움을 갖고 요르단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중동의 홍콩이라는 두바이 국제공항을 경유하여 드디어 내가 2년 동안 요르단 사람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할 요르단의 퀸 알리아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중동이라고 하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과 태양이 작열하는 열사의 나라로만 생각했던 상념을 깨고 우리가 요르단의 퀸 알리아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우리를 반기듯이 보슬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었다.

요르단에 대한 첫 인상은 좋은 편 이었다. 우리 일행들 모두가 50KG 넘는 이민가방을 찾아서 캐리어에 싣고 세관을 통관하려고 할 때 세관원이 제일 앞에서 나가려는 나에게 방사선검사대에 우리 단원들의 짐을 검사하도록 요구했다. 나는 내심 불쾌감이 들었지만 세관원에게 우리는 당신네 나라인 요르단을 돕기 위해 한국에서 온 봉사단원이다.” 라고 하니 요르단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우리 일행 모두 다 방사선 검사하지 않고 통관시켜 주었다. 아마도 그 세관원은 우리 KOICA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먼저 다녀간 우리 선임단원들이 잘 닦아 놓은 덕택이 아닌가싶다.





5.(반드시 넣어야하는 사진) 박종문1.jpg




우리 KOICA 94기 요르단 파견 봉사단 일행이 출국장을 빠져 나왔을 땐 우리 일행 앞에 이미 선임단원들이 요르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랜카드를 들고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들의 표정에서 요르단은 좋은 나라요 아름다운 나라이며 애증을 갖게 될 나라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KOICA 승합차를 타고 퀸알리아국제공항을 빠져 나왔고, 우리 앞에 펼쳐진 요르단의 땅은 광활한 평지는 없고 그저 산과 산들이 마주한 곳에 한결같이 2~4층 정도의 회색 빛 건물들이 산 정상까지 즐비하게 빼곡히 지어진 집들 뿐이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산은 산이로되 자연경관이 없는 삭막한 산들 뿐이었으며 계곡은 있으되 물이 흐르지 않는 계곡 뿐이구나 생각했다. 이런 요르단을 보면서 우리 대한민국이야말로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가히 금수강산의 나라라고 자랑 할 만하다.’ 라고 나도 모르게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내지는 애국심이 되살아났다.


5.박종문4.jpg

우리일행은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에 있는 KOICA 유숙소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풀자마자 현지적응훈련에 들어갔으며 빽빽이 짜여진 현지어학습과 요르단 익히기에 들어갔다. 그야말로 동분서주하며 촌음을 아끼고 밤잠을 줄여가며 현지적응훈련 끝마치는 그날까지 바뿐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주경야독의 연속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KOICA 사무소의 배려로 현지 문화탐방의 시간과 현지 전통음식 체험의 시간은 무미건조해가는 우리 신규단원들에게 활력소가 되었으며 요르단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풍습을 익혀가는 시간들이야 말로 요르단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드디어 어렵게만 느껴졌던 현지어학습과 현지적응훈련을 성공리에 마치고 한영태 요르단 KOICA 사무소 소장님의 격려사와 함께 수료증을 받아 들었을 땐 무언가 이뤄냈다는 자긍심과 자부심 내지는 자존심이 생겼으며 그 동안 물심양면으로 애써주신 소장님을 비롯한 사무소 관리요원인 오지선선생님과 박은향선생님과 같이한 만찬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화기애애하고 뿌듯했으며 요르단의 선배로서 우리 신규단원들에게 들려주신 많은 충고와 격려 그리고 경험담들은 현지기관에 파견되어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 신규단원들에게 힘이 되고 용기가 되는 능력 그 자체였다. 아울러 그 동안 갈고 닦은 아랍어를 가지고 현지어 훈련기간 내내 열정으로 우리가 아랍어를 배우는데 우리의 입이 되고 귀가되었으며 눈이 되었던 디나(Dina)선생님과 같이한 “Mesh ma’ool(메쉬 마-= 믿을 수 없어)”송과 연극은 현지적응훈련의 결과물인 동시에 극치였으며 우리 신규단원들과 디나선생님과 이별의 시간에서는 아쉬움과 감격 그리고 감동이 북받쳐 서로 껴안고 울며 석별의 정을 나눠야 했다.

우리 KOICA 94기 요르단 파견 봉사단의 현지적응훈련은 이렇게 끝났으며 지금은 각자 임지에서 활발이 봉사활동을 잘 하고 있으며 현지인들에게 우리 봉사단원들이 이방인이 안인 그들의 친구요 동력자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5.박종문8.jpg

이번 글에서는 본 시니어단원 박종문이 요르단에 도착하여 현재까지 자르카에 있는 한요기술원(JOKOTI)에서 근무하면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내가 만났던 많은 일반 현지인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학생들과 사귀면서 나눴던 감동적인 이야기들과 경험담을 적고자 한다.

요르단은 우리나라처럼 4계절이 있고 겨울이 되면 눈이 많이 내려 교통이 마비될 정도이며, 비가 자주 내리는 나라이다. 또 한국처럼 고대문명과 현대문명이 공존하는 나라 요르단은 B.C.6세기부터 A.C.1세기까지 나바테인(Nabatean : 아랍족)족이 페트라와 와디람이라는 거대도시를 건설하여 발달된 문명과 문화를 누리며 살았던 나라이며, 이후 A.D.105년부터 A.D.6세기까지 로마제국 통치하에서 헤레니즘문명과 로마문명 그리고 비잔틴문명과 고대 기독교문명과 문화가 있는 나라이다. 관광명소로는 제라쉬, 암만성, 사해, 마다바와 성George교회, 느보산, 모세기념관과 불뱀십자가조각물, 요단강과 예수 세례터 그리고 발달된 아카바(해안도시)가 있고, A.D.6세기이후 ISLAM제국통치하에 들어가면서(1516년부터 1916까지 역시 ISLAM제국인 OTTOMAN TURKEY제국이 지배) 오늘날까지 ISLAM국가로 자리메김한 나라이다. 이후 1916년부터 영국의 지원하에 Sherif Hussein 요르단 국왕이 혁명을 주도하여 성공 하므로서 현재의 요르단 왕국이 되었으며, 관광수입(GDP70%)이나 UN과 선진국의 무상원조로 살아가는 나라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요르단을 이정도로 소개하고 나를 친구로 생각해 주는 이 곳 요르단을 말하고 싶다.

먼저 이곳 요르단의 현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나이 67세인 나를 나이 많은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들의 친구로 불러준 요르단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자 한다. 내가 모자를 쓰고 평상복 차림으로 밖을 나서면 현지인들이 내게 다가와 한국에서 왔냐고 묻곤 한다. 그렇다고 하면 그들은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친절하게 인사를 한다. 특히 여학생이나 젊은 여성들인 경우는 아저씨, 안녕하세요!”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아저씨, 만나서 반가와요.”라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어느새 내 곁에 와서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 팔짱을 끼고 손가락으로 V자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을 찍자고 한다. 사진을 찍고 나면 내 휴대전화번호를 알려달라며 서로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찍은 사진을 WhatsApp(한국의 카카오톡과 같음)으로 보내달라고 요청을 한다. 그러고 나서 아저씨, 안녕히 가세요.”라 하고 혹자는 아저씨, 사랑해요.”라 하며 심지어는 내게 오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아가씨도 있었으며 나중에 또 만나요.”라 하곤 손 흔들며 유유히 사라지곤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WhatsApp상에서 서로 대화가 이뤄지며 문자를 주고받게 된다.


5.박종문9.jpg

내가 알고 지내는 대다수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나는 한국 드라마를 아주 좋아해요. 한국에 가고 싶어요. 한국말을 잘 하고 싶어요. 한국어를 가르쳐 주세요. 한국의 좋은 사진들을 보내주세요. 한국에 관해서 많이 알고 싶어요. I love you. I love 한국.”등등 이곳 요르단의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K-pop을 좋아하고 있었으며 어떤 여학생은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한국어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아저씨 for man, 아줌마 for lady”라고 말 하면서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이런 요르단의 젊은이 들을 보면서 이들이 한국을 무척 동경하고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한국을 사랑하는 이곳의 젊은이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으며,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뛰어 넘어 이들이 원하는 대로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을 보여주고 알리며, 한국의 선진문화와 문물 그리고 역사와 지리뿐만 아니라 풍습과 언어 등을 가르치고 알림으로써 이곳 요르단의 땅에 한류가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 이 나라의 미래를 밝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더 나아가서는 양국 간의 우호증진과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내가 이곳 요르단에 있는 동안 한국을 동경하고 사랑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과 비젼을 갖게 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런 일들을 하면서 여기 이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 내가 이곳 요르단 땅에 있어야 할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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