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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꼬 김이다(꼬:여교사)
첨부 작성일 2015-06-29 14:05:41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760

나는 김이다(꼬:여교사)

 

김나나 / 베트남 62기 한국어교육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베트남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이 나를 보러 왔다. 현재 많은 베트남 학생들이 한국의 여러 대학교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 내가 부산에 있다고 하니까 고속버스를 타고 나를 보러 내려왔다. 고맙고 반가웠다. 학생들을 안내하며 부산의 여러 관광지를 둘러보다보니 문득 하노이가 생각났다. 학생들 오토바이 뒤에 마치 딱정벌레마냥 매달려서는 그렇게 하노이 곳곳을 돌아다녔었다. 별로 대단한 얘기는 없지만 생애 가장 뜨거웠던 시절 얘기를 조금만 꺼내어 볼까한다.

 

 

하노이의 겨울, 우습게보지 말라.

나는 베트남 북부 하노이에 위치한 '하노이 대학교 한국어과'에서 활동했다. 베트남이라고 하면 많이들 여름만 있는 더운 나라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 이기도 하다. 베트남의 남부 지방은 정말로 4계절이 모두 뜨거운 여름이다. 반면 베트남 북부 지방은 4계절이 있고 겨울도 아주 춥다. 4계절이 있다지만 한국 사람이 느끼기에 봄, 여름, 가을 세 개의 계절은 그~냥 여름이고 겨울이 왜 그렇게 추웠을까..싶다. 하노이의 집은 더운 날이 연중 가장 길기 때문에 여름나라의 특징으로만 지어진다. 그래서인지 하노이의 평범한 가정집에서 겨울을 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국에는 필수적인 온돌이나 보일러 같은 난방 장치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타일로 된 바닥과 통풍이 잘되는 실내가 정말 추웠다. 차라리 옷을 입고 바깥으로 나오면 따뜻했다.(몽골 단원분들 죄송합니다..하하;;) 겨울에는 내 몸과 하나가 된 듯 펴져있던 침대위 코이카 전기장판이 더없이 소중했다. 그런데 그때 지급되었던 전기장판은 고장이 정말 잘났다.(62기 다른 동기님들 전기장판은 어땠나요?) 베트남 북부지역 겨울의 또 다른 공포는 몇 개월간 지속되는 안개와 비다. 안개 짙은 하노이의 겨울은 정말로 운치 있다. 그러나 아침부터 밤까지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안개와 비란 나중에는 정말로 괴로운 수진이 된다. 거의 매일 아침을 짙은 안개비로 시작하고 하늘은 늘 회색빛이다. 우스갯소리로 이 지역 아이들이 아는 '하늘색'은 파랑 계열이 아니라 회색 계열일 거라는 말도 했었다. 그래서 하늘이 하루라도 살풋개어 파란색을 보여주면 나는 무조건 집밖으로 뛰쳐나와 거리를 쏘다녔다. 몸에 묵은 축축함을 날려버리려는 듯이. 그런데 하노이에서는 다른 계절이 와도 파란하늘을 보기가 정말 어려웠다. 세계 날씨에 정통한 전문가가 있다면 꼭 물어보고 싶다. 대체 무엇 때문인가요? 어쨌든 그렇게 습한 날씨 속에서 3~4개월 동안 지내다보면 나와 내 방 물건들은 곰팡이와 전쟁을 치러야 한다. 물론 곰팡이는 32도를 웃도는 봄과 습도 85%에 43도를 넘나드는 여름과 만나도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제가 뭐라고 이리 좋아해 주시나요

내가 만난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을 정말로 좋아해 주었다. 그래고 내가 가르쳤던 하노이 대학교 한국어과 학생들은 한국을 특히 많이 사랑해 주었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베트남에는 한국회사가 많이 진출해있기 때문에 한국어를 잘하게 되면 취업에 큰 도움이 된다. 그것고 별개로 한국과 한국 문화가 그저 좋아서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도 많다. 학생들이 아닌 베트남 현지 사람들이 나를 한국 사람이라고 반겨주고 좋아해 줄 때에는 정말로 몸 둘 바를 모르도록 수줍고 감사하다. 한국 정부의 부단한 노력과 베트남에 널리 퍼진 한국 문화 덕에 그런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로 나는 평소에 한국 아이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베트남에 가서 그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이돌님들은 정말로 고마운 존재다. 그들이 세계적으로 열심히 활동해 준 덕에 한국인인 나를 베트남 사람들이 더 좋아해 준다고 생각한다. 특히 젊은 층에서는 K-pop의 영향이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절대로 앞에서든 뒤에서든 아이돌을 시쳇말로 까지 않는다. 진심으로 그저 고맙다. 한국 아이돌님들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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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과 배움의 경계

처음에는 베트남 말이 너무 어려워서 내가 베트남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다. 내 활동의 대부분은 학교에 나가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떠올려 보면 내가 한국어를 가르쳤던 수업 시간들 뺴고는 내가 선생님이 아닌 학생이 되어 오히려 많이 배웠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아니다, 심지어 수업 시간 중에도 많이 배웠다. 특히 베트남 말과 베트남 생활, 베트남 문화, 그리고 베트남 정신까지. 내가 가르친 그녀들은('그'들도 있다. 그러나 인원수가 적어서 '그녀'들로 통일 하겠다. 미안해요 남학생들~)한 명도 빠짐없이 오토바이를 눈 감고도 타고 한국 사람보다 어른 공경이 몸에 배 있다. 입학할 때는 한글도 몰랐는데 4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고 나면 많은 수의 졸업생들이 일반적인 한국어를 넘어서 한국식 개그까지 이해한다. 심지어 그녀들은 나보다 김밥도 잘 싸는 데다가 김치도 잘 담근다. 휴.. 진짜 너무 잘났다. 특히 Phuong Anh(프엉 아잉)은 내가 굳이 엄마라고 부르고 싶은 첫 번째 이름이다.(물론 두 번째 세 번째도 끝없이 있다) 선건강, 후봉사. 코이카 국내훈련 때부터 정말로 많이 들었던 말이다. 건강 하나만은 무조건 자신이 있었는데 활동 1년이 되어가면서 멀쩡하던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다행히 베트남은 한의학과 비슷한 동방의학이 발전해 있었다. 그래서 현지 병원에서 한국 한의원과 비슷한 치료가 가능했다. 하필 아파도 하노이에서 가장 춥고 습한 12월부터 아프다니. '프엉 아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추운 아침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손을 호호 불며 우리집 앞 도로에서 나를 기다리던 모습이다.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병원을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그녀가 병원에 가는 나를 데리러 왔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이 아픈 부위와 복잡한 증상을 베트남말로 베트남의사에게 설명하는 일이었다. 그런 나를 한국말을 잘하는 그녀가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추운 아침 오토바이를 운전해 2주 정도의 치료기간 내내 나를 태워 하노이를 내달렸던 스무 살 우리 엄마 프엉 아잉. 허리가 아팠던 시간 동안 나는 봉사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참 부끄러웠다. 그리고 앞으로는 건강관리를 철저히 해야겠다고 반성도 많이 했다. 프엉 아잉은 이후에도 내가 혼자 사니까 끼니를 잘 못 챙겨먹는 것 같다고(대체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자기네 집에 데려가 밥을 먹이고 내가 참여했던 코이카 현지 사무소 일도 자원봉사자로 많이 도와주었다. 하노이 대학교에는 이렇게 바라는 것도 없이 나를 도와준 그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있다. 집을 구하러 같이 다녀주고 어려운 베트남 말이 필요할 때면 도와주고 지갑을 잃어버린 내게 선생님 불쌍하다고 쌀국수까지 사주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베트남에서 내가 한 일 보다 오히려 그들에게 배운 것이 더 많다.

 

겁나게 애정합니다. 동기님들

내게 베트남 동기가 한 명도 없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아.. 상상하기도 싫다. 그것은 무료함이다. 나태함의 시작이다. 답답함이다. 지금까지도 동기들과 서로 연락하며 지낸다. 활동했던 지역도 다들 가깝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친하게 지냈나..싶다. 아직도 그들이 없었다면 2년을 버터지 못했을 거란 생각을 종종한다. 베트남 남부 동나이 지역 동기는 내게 스스로의 나태함을 되돌아보게 해 주었고, 북부 타잉화 지역 동기는 하노이에서 가끔 만나 일상의 단비같은 하루를 선물해 주었다. 중부 빙과 다낭 후에 지역동기는 활동하면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서로 묻고 힘들때 위로와 격려를 해주며 오늘을 이겨내게 도와주었다. 남부 호치민 지역 동기들과는 지도상 끝과 끝에 사는 사이였지만 그저 베트남 땅에 함께 숨 쉬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고 고마웠다. 이번 기회에 글로 나마 62기 베트남 동기들에게 '진심으로 함께해줘서 고마웠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많은 선후배, 코이카 동료 단원분들도 감사합니다!)

 

베트남은 나와 밀당하는 사이








나는 베트남이 정말 좋다. 다시가서 살라고 하면 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런마음이 처음부터 잘 먹어지는 건 아니었다. 내게도 아주 여러번의 고비가 찾아왔었다. 열악한 환경과 만나게 되고 때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따져보지도 못하고 받아 들여야 하는 상황도 펼쳐진다. 가끔은 사뭇 진지하게 내가 겪었던 불편함을 토로하고 싶고 실컷 욕도 하고 싶을 것이다. 아니 해도 된다. 심지어 나는 오전 11시 사람이 지나다니던 하노이 집 근처 지하도에서 맞닥뜨린 베트남 치한 놈을 지금까지도 욕한다.(네이놈! 꼭! 벌! 받아라!) 활동국과의 애증의 관계라고나 할까. 하하.

이미 귀국한 코이카 단원들은 불편하고 괴로웠던 시간들마저 추억이 된다는 걸 아실 것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사는 자신을 위해 혹은 그곳에 살았던 나를 위해 진심으로 베트남을 사랑하자고 말하고 싶다.


사랑하자.

             뜨거운 내 시간을 고맙게 받아준 내 친구들이 사는 그곳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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